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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시내의 설계도


알랭 드 보통의 <행복의 건축>을 예상했다면 김시내의 작품을 절반만 이해한 것이다. 그가 보여주는 현실은 빛 보다는 그림자 영역 속에 놓여 있다. 감추고 싶었고, 인정하기 싫었던 현실을 설계도 드로잉 작업을 통해 보여준다. 그리고 그 안에 인간, 건축, 도시, 시간이라는 커다란 주제를 담아 낸다. 이렇듯 김시내의 전시 <위대한 설계>는 건축적 논리를 제시하지 않는다. 대신 과거와 미래가 공존하는 이율배반을 기반으로 인간의 욕망을 그려내는데 집중한다. 재단 위에 빛을 내뿜고 있는 듯 하얗게 탈색된 도형은 건축구조물과 설계도면 사이에서 떠 다니는 환영에 가깝다. 이는 시간 속에서 거대해지고 동시에 언제 그랬냐는듯이 증발해 버리는 인간의 욕망을 상징하는 알레고리이다. 그런면에서 작가가 바라본 도시풍경은 이 같은 인간의 욕망들이 집단적으로 생산되고, 연결되고, 소멸되는 현장과도 같다. 산업화, 현대화 속에서 소멸되어가는 옛 흔적들과 그 흔적들을 먹어 치우고 있는 거대자본의 구조물을 보며 욕망의 문제가 개인적 차원이 아닌 집단적, 사회적 차원이라 사실을 이해하게 된다.

그런 점에서 김시내의 설계도들은 하나의 현상이 가지고 있을 상반된 의미, 그리고 그 상반된 의미 사이의 간극을 제도하고 있다. 과거에 만들어진 건축 도면 속에서 미래의 모습을 그리고 완성된 건축구조물 속에서 과거의 폐허를 읽어 낸다. 시간을 어떻게 인지하는가에 따라 세상을 바라보는 해석이 달라지고, 그 차이의 크기 만큼 새로운 해석이 개입된다. 르코르뷔제의 도면이 과거를, 서울의 아파트 풍경이 현재를, 영화 인셉션의 도시풍경이 미래를 연상시킨다고 가정했을때, 설계도는 인간의 이성과 무의식 그리고 시간과 공간 사이에서 발생하는 사회적 욕망의 변주이다. 전시장 바닥에 양탄자처럼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머리카락 더미 역시 시간과 관점에 따라 달라지는 해석의 예이다. 예쁘게, 멋지게 보이기 위해 치장했고, 그래서 섹시미의 상징이었던 머리카락이 바닥에 떨어지고 누구의 것인지 조차 알 수 없는 익명성을 획득했을 때 불쾌하고 지저분한 쓰레기로 변한다.

자본과 기술을 집대성한 체르노빌 원전의 재앙을 건축 설계도를 보며 예측할 수 있는 사람이 없었듯이, 진실은 마치 영화 인셉션의 가상 도시 이미지처럼 완전한 듯 보이다가 어느 한 순간 무너져 내릴 수 있을 만큼 취약하다. 세곡동에서 발견한 비닐 하우스를 아이패드를 활용해 수채화를 그리듯 표현하는 동안, 피라미드, 버즈 알 아랍, 타워 펠리스 등 권력, 자본의 상징구조물들은 하얗게 지워버렸다. 김시내의 세상보기를 엿 볼 수 있는 대목이다. 네트워크, 집단지성, 한 개인의 정체성은 거대한 도시의 맥락 안에서 규정되고, 그렇게 규정된 개인의 시선과 상상력은 주어진 맥락을 극복하기 보다는 그 안에 갖혀버리기 쉽다는 사실을 김시내의 작품을 보면서 확인하게 된다.

이대형 (대표, Hzone)